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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요지경

이수미 별세.. 고통스러운 투병생활과 마지막 노래..

by 하늘 미소 2021. 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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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인기 가수 이수미가 향년 69세의 나이로 별세 하셨습니다..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계시던 중 별세 하신것인데요. 이수미의 별세 원인과 과거 이수미의 노래까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수미​는 누구인가?

이수미는 1952년 전라남도 영암에서 태어나 1969년 본명인 이화자로 '당신은 갔어도'를 발표하며 데뷔했습니다.
이후 예명인 이수미로 1970년 '때늦은 후회지만'을 발매한 뒤 '밤에 우는 새'(1971), '두고 온 고향'(1972) 등을 선보였고, 
1972년 발표한 '여고시절'이 당대의 히트곡이 되면서 톱스타 반열에 올랐습니다.

이수미/

허스키하고도 호소력 있는 이수미 특유의 음색으로 높은 인기를 누린 이수미는 한 해 동안 가장 뛰어난 활동을 펼친 남녀 신인가수에게 시상하는 '낙엽상'과 TBC 7대 가수상, MBC 10대 가수상을 잇달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이수미는 이 밖에도 '내 곁에 있어 주', '방울새', '사랑의 의지', '오로지' 등 많은 히트곡을 냈으며 1970년대를 풍미했습니다.

이수미/

​또한, 이수미는 대한가수협회 감사로 활동하며 가수들의 권익 보호에도 힘써온 분이기도 합니다. 이수미는 최근까지도 대한가수협회 감사로 활동했으며 투병 중이던 이수미는 지난 5월에도 신곡 '별이 빛나는 이 밤에'를 발표하는 등 노래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습니다.

이수미의 착한 심성

 

이수미는 신인가수상도 거치지 않고 바로 톱스타 자리에 올랐는데, 귀여운 외모, 목소리로 팬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 계속 승승장구한 이수미지만 뜩밖에도 대천 해수욕장 피습사건에 휘말리게 되었습니다. 무대를 마친후 해수욕장에서 걷고 있는데 공격을 당한 이수미. 

이수미/

당시 범인에게 찔린 이수미지만 제대로 고소를 해도 모자랄 판에 계속 언론에서 보도되는 것이 힘들어 자해를 했다고 
거짓말을 하여 피습 사건이 자해소동으로 바뀌기도 하였습니다. 

이수미/

이런 이야기만 봐도 마음이 정말 여리고 남을 먼저 생각하는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요. 입양한 딸 결혼식에서 펑펑 우는 모습을 보여주며 이수미의 착한 심성을 짐작케 하기도 했습니다.

 

이수미는 교회를 다니며 봉사활동도 함께 하게 되었는데 그때 입양한 딸 정은씨를 만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정은씨의 나이는 중학교 3학년이었습니다. 이수미는 싱글의 몸으로 입양을 하게 되었다는데요. 혼자서 키우겠다는 결심도 하기 쉽지 않았을텐데 정말 대단합니다.

이수미/

딸인 정은 씨가망설이다가 "엄마"라고 부르던 그 순간을 절대 잊지 못하겠다고 한 가수 이수미. 그러다 남편 배제동씨를 만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수미 남편의 직업은 의료기 사업을 하는 사업가로 교회에서 만남을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배제동씨는 딸 정아씨를 데리고 왔다고 하는데요. (전처와의 딸이라고 합니다.) 남편과 양평에 위치한 전원주택에서 텃밭을 가꾸며 시골생활을 즐기는 모습으로 근황을 전하기도 했었습니다.

이수미 투병생활

 

이수미는 지난해 12월쯤 폐암 3기 판정을 받고 신촌세브란스 병원에서 투병생활을 이어왔습니다. 그러다 결국 암세포가 온 몸에 전이되었다고 하는데요. 남동생의 말에 의하면 8개월 가량 투병생활을 하다가 가족들 곁에서 편안하게 운명을 하셨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당시에 남동생은 호전되고 있는 상황이 아니며 수술 또한 하기 어려운 상태라고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수미/

위에서 말씀드렸듯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지난 5월에 마지막 노래를 '별이 빛나는 이 밤에' 를 발표하여 영원한 가수의 모습을 보여준 이수미.. 정말 멋있고 대단하십니다.. 

이수미의 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3호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5일 오전 11시, 장지는 양평 선영으로 전해졌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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